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라예보 사건 (문단 편집) == 여담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1px-Gavrilo_Princip_steps_and_plaque.jpg]]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시절에 사건 장소에 있었던 명판의 모습이다. 사진은 1987년에 촬영되었다. 명판의 내용은 "1914년 6월 28일 이곳에서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사격으로 폭군에 대한 인민의 항쟁과 수세기에 걸친 우리 인민의 자유를 향한 열망을 드러내었다."이다. 프린치프가 황태자를 저격할 때의 발자국 모습까지 본을 떠 놓았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74px-Gavrilo_princip_memorial_plaque_2009_edit1.jpg]] 위의 명판과 발자국은 [[보스니아 전쟁]] 때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파괴되었고 새 명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글자도 [[키릴 문자]] 대신 [[라틴 문자]]로 바뀌었으며 명판의 서술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이 자리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부부를 암살했다는 사실관계만 적어 중립적으로 바뀌었다. 티토 사후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유고슬라비아 권력을 독점하고 각 민족들을 억압하면서 사라예보가 속한 보스니아에서 세르비아인들의 보슈냐크인 대학살을 한 것이 주 원인으로 당연히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벌인 사라예보 사건의 평가도 박해진 것. 20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사건 100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구 유고슬라비아와 [[세르비아인]]들 중에는 주범 프린치프를 영웅으로 기리는 쪽도 있지만 반세르비아 감정이 강한 [[크로아티아인]]과 [[보슈냐크인]] 쪽에선 테러범으로 비하하는 인식도 있는 듯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2&aid=0002684900|기사]] 기념식의 일환으로 이 날 암살 대상이었던 황태자의 나라 오스트리아에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프란츠 벨저-뫼스트|프란츠 벨저뫼스트]]가 초빙되어 암살 장소 근처에 있는 사라예보 국립 도서관 로비에 마련된 특설 무대에서 공연을 가졌고 이 실황은 2015년 5월에 소니 클래시컬에서 [[DVD]]로 발매되었다. [[http://www.prestoclassical.co.uk/r/Sony/88875069219|관련 사이트]] 사건 100주년인 2014년을 맞아 [[사라예보|동사라예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땅이지만 세르비아계 구성체인 [[스릅스카 공화국]] 소속이다.]에서는 프린치프의 동상이 제막됐다.[[https://www.b92.net/eng/news/region.php?dd=27&mm=06&nav_id=90812&yyyy=2014|#]][[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8/81/Spomenik_Gavrilu_Principu_08.jpg/768px-Spomenik_Gavrilu_Principu_08.jpg|모습]] 그리고 2015년에는 "스릅스카의 세르비아인들이 세르비아에 보내는 선물"로서 [[베오그라드]]에도 프린치프의 동상이 세워졌다.[[https://www.bbc.com/news/blogs-news-from-elsewhere-3304800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